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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속 산 이야기, 역사 속 산행지 7선

ad-ggomom-2 2025. 4. 17. 02:35

산은 조선왕조에게 단지 자연의 일부가 아니었습니다. 왕의 행차와 국태민안 기원, 조정 회의, 신하의 유배지, 심지어 사냥터까지—산은 역사적 순간들의 배경이자 핵심 공간이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그런 산들의 이름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본 글에서는 실록에 실제로 기록된 산 중에서도, 오늘날에도 직접 찾아가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산 7곳을 소개합니다. 단순한 등산이 아닌, 왕의 기록을 따라 걷는 역사 산행을 떠나보세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산들

 

1. 조선왕조실록에 왜 산이 기록됐을까?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25대 왕들의 통치 기간 동안의 모든 행적과 사건을 연대기 형식으로 기록한 방대한 역사서입니다. 총 1,893권에 달하는 이 기록 속에는 조정의 결정, 전쟁, 기상, 외교, 일상생활은 물론, 왕과 산의 관계에 대한 기록도 곳곳에 등장합니다.

왕이 직접 산에 행차하거나, 군사를 배치하거나, 기후재와 제사를 지낸 산들은 정치적, 종교적, 군사적, 풍수적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어떤 산은 도성의 수호신으로, 어떤 산은 왕조의 근원지로 여겨졌으며, 산을 둘러싼 사건들은 조선의 역사와 맞물려 매우 중요하게 기록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실제로 오늘날에도 탐방 가능한 산 7곳을 중심으로 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2.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한 대표 산 7곳

 

2-1. 인왕산 – 왕의 꿈과 도성의 수호신

서울 종로에 위치한 **인왕산(仁王山)**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도읍을 정할 때 풍수지리적으로 도성을 수호하는 ‘좌청룡 우백호’ 중 백호의 역할을 하는 산으로 판단되어 기록에 남았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중 태조실록에는 “인왕산이 도성의 서쪽 백호로 적합하여…”라는 구절이 있으며, 이후에도 왕들의 꿈에 인왕산이 등장하거나, 도성을 지키기 위한 수호신으로 제사를 지낸 기록이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 산행 팁: 사직단 → 인왕산 정상 코스로 서울 도심의 풍경과 조선의 풍수지리를 함께 감상 가능
📍 역사 포인트: 수성동계곡, 인왕사, 도깨비바위

 

2-2. 백두산 – 조선 왕조의 영산이자 국조의 근원

백두산은 단군신화와 연결된 산으로, 조선 왕조의 시조 이성계가 하늘로부터 왕권을 받았다고 믿은 영산입니다. 태조실록과 세종실록에는 “백두산은 국조(國祖)의 근원이며, 그 정기를 받은 이가 왕이 되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실제로 조선 초기에는 백두산에 제사를 지내기 위한 사신을 파견했으며, 산 자체를 국가의 영토 경계이자 신성한 공간으로 인식했습니다.

📍 산행 팁: 현재 남북 분단으로 인해 국내에서 탐방은 제한적, 중국 측에서 백두산 등정 가능
📍 역사 포인트: 백두산 천지, 장백폭포, 단군 제단 추정지

 

2-3. 금강산 – 국왕의 감탄을 불러낸 절경

금강산은 아름다운 산수로 인해 조선 왕들 사이에서 자주 언급되었습니다. 특히 세조와 정조가 감탄하며 시문으로 남긴 금강산의 절경은 실록에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조실록에는 “금강산의 만물상이 그림보다 더하니, 신선이 노닐 법하도다”라는 찬사가 있고, 정조는 유배지에 있는 신하에게 금강산 경치에 대해 물으며 “그대의 눈이 부럽다”라고 기록한 일화도 있습니다.

📍 산행 팁: 현재 북한 관할로 탐방 제한, 옛 금강산 유람기 문헌을 통한 가상 산행 가능
📍 역사 포인트: 만물상, 해금강, 구룡연

 

2-4. 북한산 – 병자호란과 왕의 피난처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청나라 군대를 피해 남한산성이 아닌 북한산성으로 이동하려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실록에는 “북한산은 도성과 가까우며, 지형이 험하여 군사 방어에 적합하다”고 언급됩니다.

실제 인조는 북한산성 축성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후일 왕들의 피난처와 군사 요충지로서 계속 관리되었습니다. 현재도 북한산성은 조선의 방어 전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산성 유적 중 하나입니다.

📍 산행 팁: 정릉 → 대남문 → 백운대 코스는 산성과 도심 전망을 모두 즐길 수 있음
📍 역사 포인트: 북한산성, 행궁지, 산성 순환길

 

2-5. 계룡산 – 도읍 후보지로 거론된 명당

계룡산은 조선 창업 초기에 이성계가 도읍지로 삼으려 했던 장소로 조선왕조실록에 수차례 등장합니다. 태조실록에는 “계룡산이 산세가 웅장하고 명당이 많아 궁궐을 짓기에 알맞은 곳이라 하였으나, 흉조가 있어 한양으로 옮기게 되었다”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그만큼 계룡산은 풍수적으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 산이며, 이후에도 국태민안을 비는 제례 장소로 이용되었습니다.

📍 산행 팁: 동학사 → 남매탑 → 관음봉 코스는 역사 산행과 풍수 탐방이 가능
📍 역사 포인트: 왕궁 예정지 터 전설지, 동학사 고건축

 

2-6. 지리산 – 국난 속 의병의 요충지

조선후기 실록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중 지리산을 의병의 거점으로 활용한 기록이 다수 등장합니다. 특히 정유재란 당시에는 “의병장이 지리산에 병력을 모아 적을 유인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고종실록에도 지리산에서 항일운동이 있었다는 기록이 추가됩니다.

또한 조선 후기 왕들은 지리산을 ‘남방 수호의 상징’으로 여기고, 이곳에서의 민심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 산행 팁: 하동 화개 → 쌍계사 → 불일폭포 코스는 역사와 자연의 조화를 느낄 수 있음
📍 역사 포인트: 의병비, 옛 토벌로, 고승 사적지

2-7. 구월산 – 조선 초기 왕실 기도처

구월산은 지금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선 초기에는 왕실이 기도와 제례를 지내기 위한 성지로 여긴 산입니다. 태종실록에는 “국운이 흔들릴 때 왕은 구월산에서 기도를 올렸으며, 무사 귀환을 기원하였다”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또한 구월산은 이성계가 고려 말기에 머무르며 왕이 될 운명을 점쳤다는 전설도 전해지며, 후대 왕들이 이 산을 중요한 영적 공간으로 여겼습니다.

📍 산행 팁: 강원도 철원 방면 산행, 접근성은 다소 낮지만 조용한 산행 가능
📍 역사 포인트: 제단 터, 구월산성, 구월사

 

3. 왕의 기록을 따라 걷는 역사 산행법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산을 탐방할 때는 일반 산행과는 다른 감동이 있습니다. 단순한 등산이 아니라 왕이 그 산에서 무엇을 했고,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를 알고 걷는 역사 체험이기 때문입니다.

 

산행을 더욱 풍부하게 즐기는 팁:

  • 📖 실록 원문 사전 탐색: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사이트 활용
  • 🗺 지도와 함께 기록 연결: 실록 속 지명과 현재의 등산 코스를 비교
  • 🎧 문화해설 앱 이용: 현장 설명을 들으며 걷는다면 몰입도 극대화
  • 📸 실록 구절 인용과 사진 결합: 블로그 콘텐츠로 활용 시 SEO 효과 큼

 

4. 기록된 산, 역사를 품은 산을 걷다

우리가 걷는 이 산길은 수백 년 전 왕이 고민하고, 신하가 제를 올리며, 백성이 숨죽여 지켜본 바로 그 장소일 수 있습니다.
산은 그저 자연이 아닙니다. 그 안에 사람이 있고, 정치가 있고, 신앙이 있고, 문화가 있고,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왕의 역사이고, 그 안에 등장한 산은 그 시대의 공간이자 상징입니다.
다음 산행은 ‘높이’가 아닌 ‘이야기’를 따라가 보세요.
그 길 위에서, 진짜 조선의 시간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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